박상인 교수(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행정대학원)

정희성 시인은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라고 했다. 서울대가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의 요람이고 한국 사회가 나아갈 등대 역할을 하는 지성의 전당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과연 서울대의 구성원은 우리 사회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기득권의 이익에 반하더라도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치열한 지성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다가오는 미래를 이끌 인재를 양성할 교육 환경과 교육 과정을 제시하고 있는가? 눈을 들어 우리 내부를 보면, 이와 같은 질문조차 거의 사라졌고, 서울대는 개인의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영달을 뛰어넘는, 대한민국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생각하지 않는 대학에 공적 자금이 지원돼야 할까? 대학이 직업훈련 학원과 무엇이 다른가? 서울대의 역할에 대한 학내 공론화는 적어도 총장 선출을 계기로 이뤄져야 하나, 현실은 이런 이상과 멀어도 너무 멀다.

직선제 이후 총장 후보들의 공약은 교직원 급여와 복지 증진에 초점이 맞춰져 왔고, 대학 평가기관들의 평가 순위에 대한 목표치를 제시하는 수준이었다. 인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교수들이 마치 대선 캠프처럼 조직되고, 후보 캠프에 참여했던 교수들이 총장 당선 이후에 주요 보직을 꿰차고, 보직자 카르텔이 형성되고, 정치적이지 않은 일반 교수들은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 서울대 총장 선거가 패거리 정치판과 무엇이 다른지 알기 어렵다.

길을 잃은 서울대를 바로 세우는 것은 서울대 거버넌스(governance)의 재설계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제도만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제도를 잘 운용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결국 학내외 환경과 대학의 지향점이라는 맥락에서, 잘 운용될 수 있는 제도는 무엇인지가 핵심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항로를 밝힐 수 있는 지성의 전당과 실질적인 창의 인재 교육을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지향하기 위해 총장과 프로보스트(Provost)의 이원체제로 변경을 제언한다. 미국의 대학들에서 총장은 학교를 대표해 대외적 활동을 주로 하고, 프로보스트가 교내 살림살이를 사실상 맡는다. 흔히 총장은 외무부장관, 프로보스트는 내무부장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영국 대학들도 챈슬러(Chancellor)와 프레지던트(President)의 이원체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미국처럼 총장의 주 업무를 모금으로 하거나, 영국처럼 대학에 상주하지 않는 명예직 같은 챈슬러를 만들자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경우에 총장이 지성의 전당을 이끄는 역할을 맡고, 프로보스트는 예산과 행정 업무를 맡자는 것이다. 

이 경우 총장 후보들은 서울대의 지향점을 논의하며 경쟁하고, 구성원의 급여와 복지는 프로보스트의 몫이 된다. 국민이 눈을 들어 다시 볼 수 있는 서울대로 거듭나기 위해, 총장과 프로보스트 분리 선출과 이들 간 권한과 관계 설정 등의 세부 내용은 교내위원회를 구성해 구체화해 다음 총장 선출 때부터 적용할 것을 제언한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