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문화 | 2025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상설전 〈규장각, 별처럼 빛나는 기록의 향연〉

▲근대 시기 기록물이 전시된 모습.
▲근대 시기 기록물이 전시된 모습.

2025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상설전 〈규장각, 별처럼 빛나는 기록의 향연〉이 지난 1월부터 오는 8월 29일까지 규장각한국학연구원(103동)에서 열린다. 다양한 전공의 학예연구사 6인이 기획에 참여한 이번 전시는 △정치 △경제 △고지도 △회화 △서구와의 교류 △종교와 철학 6개 주제로 구성됐다.

 

◇학문을 사랑한 정조의 규장각, 그의 서가를 탐험하다=규장각(奎章閣)은 별(奎)과 같은 글(章)을 다루는 곳이라는 의미로, 이번 전시에서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기록유산을 고유한 가치를 가진 별에 빗대 소개한다. 기자와 동행해 전시 설명을 맡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김희경 학예연구사는 “밤하늘을 수놓은 별자리를 보듯 다양한 작품을 통해 과거를 음미할 수 있게 하고자 했다”라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 총 93종 232점의 전시품 중에는 국보와 보물은 물론 조선 전기부터 근대 시기의 일상을 담은 기록물도 포함됐다. 각 작품 설명에 부착된 QR코드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돼, 관람객이 작품의 고화질 이미지와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이번 규장각 전시는 조선 후기 정조가 구상한 책가도(冊架圖)를 영감으로 삼았다. 책가도는 책을 비롯한 도자기, 향로 등이 책장에 놓인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즉위 후 전처럼 독서할 시간이 많지 않았던 정조가 책가도를 병풍으로 세워 항상 책과 함께하는 마음을 느끼고자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김희경 학예연구사는 “서가 곳곳을 탐방하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듯, 전시를 통해 관심이 생기는 기록유산을 하나 골라보는 것도 전시의 묘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먹과 붓의 흔적에는 과거의 숨결이 있었다=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첫 번째로 다스림에 대한 왕실의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국왕의 생활과 정치 상황을 빠짐없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정조실록·태종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은 기록을 중시했던 왕실 제도를 생생히 보여준다. 특히 『일성록』은 국정에 관한 제반 사항을 관원들이 왕의 시점에서 일기체로 기록한 정무 일지로, 정조 시기에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는 첨삭과 취사선택 하에 왕의 승하 이후 집필되는 실록과 달리 왕의 일상이 한층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어지는 전시에서는 나라 살림을 체계적으로 꾸리고자 했던 조정의 노력을 살펴볼 수 있다. 김희경 학예연구사는 “나라 살림은 곧 인구 조사와 토지 조사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며 “오늘날의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자료가 이곳 규장각에 생생하게 남아있다”라고 소개했다. 대표적으로 『김석주 처 황씨 준호구』는 호주의 신청으로 관에서 발급하는 호적 ‘준호구’를 당시 황 씨 호적을 가진 남성이 없어 여성이 발급받았던 사례를 보여주는 자료다. 준호구는 당시 조선이 호적 조사를 중시했으며, 예외적으로 여성도 호주로 등록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통치와 경제사 관련 기록물 옆에는 『대동여지도』를 시작으로 다양한 그림 자료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마치 회화 작품 같은 『전주지도』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김희경 학예연구사는 “당시 제작된 지도가 대부분 군사와 통치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회화식 지도인 『전주지도』가 주는 감상은 특별하다”라며 “이는 조선 왕실의 뿌리였던 전주를 아름답고 평화롭게 묘사해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도 오른쪽 아래 태조의 영정을 보관했던 전각 주변에 백로가 떼로 앉아 있는 모습은 상서로운 백로의 이미지와 함께 회화식 지도의 색다른 매력을 한층 깊게 보여준다.

 

◇학문과 종교 철학을 통해 지식을 전파하다=고지도와 회화 작품을 지나면 △유교 △불교 △도교 철학을 조선의 사대부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관음현상기』는 관세음보살을 둘러싼 구름과 신하들이 이를 지켜보는 모습이 묘사된 기록이다. 이에 대해 김희경 학예연구사는 “세조와 신하들이 관세음보살을 실제로 목격했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진 해당 작품은 왕위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했던 세조가 불교에서 그 방도를 모색했음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종교 기록물이 자리한 곳에서 뒤를 돌면, 근대 시기의 자료가 펼쳐진다. 관람객은 △『만국정표』 △『사민필지』 △『제물포각국조계지도』 등을 통해 세계 각국과 교류가 확대되던 당시 조선의 외교적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특히 『만국정표』는 타국의 정치·경제·군사·사회 관련 사항이 담긴 책으로, 서구 학문을 수입하고 전파하려는 고종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자료다.

이 밖에도 전시장 끝에는 △『경국대전』 △『동국여지승람』 △『용비어천가』 △『훈민정음』 등 모두에게 익숙한 출판물들을 통해 조선 출판 문화의 백미를 맛볼 수 있다.

 

김희경 학예연구사는 “수백 년을 지나온 기록에 담긴 역사와 지혜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감상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25만여 점의 별들, 그중 이번에 출품된 기록물은 마치 거대한 별자리를 이루는 듯했다. 광활한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따라 걸으며, 조선의 모습을 한껏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박수빈 기자

wat3rm3l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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